
LA에 살 때 샌디에고를 처음 기차로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차로 두 시간 거리니까 그냥 운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차를 타고 해안선을 달리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샌디에고는 날씨도 음식도 경관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도시인데,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꽤 달라집니다.
암트랙 기차로 가야 하는 이유
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샌디에고까지 달리는 암트랙(Amtrak) 퍼시픽 서프라이너 노선을 타면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퍼시픽 서프라이너란 LA에서 샌디에고까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운행하는 장거리 철도 노선으로, 미국 서부 해안 절경을 객실 창문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어느 순간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지면서 기차가 마치 파도 위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자동차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 즈음 샌디에고에 도착하는데, 그 자체로 여행의 일부가 됩니다.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샌디에고 도심은 트롤리(trolley, 도심 경전철)가 잘 연결되어 있어서 렌터카 없이도 주요 관광지를 충분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펫코 파크(Petco Park) 같은 야구장은 트롤리 그린라인을 타고 가스램프 쿼터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보 5분 거리입니다. 렌터카를 빌리면 샌디에고 호텔 주차비가 1박당 50달러 수준이고 발렛 팁이 매번 2달러씩 추가되는데, 기차로 이동하면 이 비용을 상당 부분 아낄 수 있습니다.
LA에서 샌디에고를 여러 번 다녀온 입장에서, 적어도 한 번은 기차를 타보길 권합니다. 차 운전에 쓸 체력을 아껴두면 현지에서 더 오래 움직일 수 있습니다.
관광지 선택이 막막할 때 이렇게 접근하세요
샌디에고를 처음 계획할 때 가장 난감한 부분이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하나"입니다. 제가 여러 번 다녀오면서 느낀 것은, 이 도시는 규모 대비 즐길 거리 밀도가 꽤 높다는 점입니다.
샌디에고는 해양 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 MPA)을 포함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도심 가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MPA란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활동을 제한하는 해역으로, 라호야 코브(La Jolla Cove)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라호야 코브에서는 바다사자와 갈매기가 1미터 앞에서 노는 장면을 맨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몰 시간에 맞춰 가면 태평양으로 지는 노을과 야생동물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정말 벅차게 다가옵니다.
제가 직접 가봤던 곳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를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라호야 코브: 일몰 감상 및 해양생물 관찰, 해수욕 모두 가능한 해안 보호구역
- 펫코 파크: 샌디에고 파드리스 홈구장, MLB 관람 가능. 가스램프 쿼터 트롤리 정류장에서 도보 5분
- USS 미드웨이 뮤지엄: 실제 항공모함을 항구에 정박해 박물관으로 운영. 성인 입장료 34달러, KKday 사전 예약 시 할인
- 발보아 파크(Balboa Park): 미국 최대 규모의 도심 문화공원. 샌디에고 동물원과 자연사박물관 등 17개 기관이 입주
- 샌디에고 동물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동물원. 코알라, 자이언트 판다 등 보유
발보아 파크는 제가 예상보다 훨씬 넓고 볼 거리가 많아서 놀랐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인 스패니시 콜로니얼 리바이벌(Spanish Colonial Revival)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공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꽤 인상적입니다. 스패니시 콜로니얼 리바이벌이란 16~18세기 스페인 식민지 건축 양식을 20세기 초 미국에서 재해석한 건축 스타일로, 아치형 회랑과 붉은 기와지붕, 타일 장식이 특징입니다. 샌디에고 시내 곳곳에서 이 양식을 볼 수 있어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건축 전시장처럼 느껴집니다. 필즈 BBQ부터 타코 스탠드까지, 맛집 전략에대해 말씀드립니다. 샌디에고 음식 이야기를 빼면 섭섭합니다. 이 도시는 멕시코 국경에서 불과 3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텍스멕스(Tex-Mex) 요리가 아닌 정통 멕시코 타코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국 도시입니다. 텍스멕스란 텍사스 지역에서 변형된 미국식 멕시코 요리를 가리키는데, 샌디에고의 타코는 이보다 훨씬 원형에 가까운 맛입니다. 실제로 제가 샌디에고에서 먹은 타코는 지금껏 미국 어디서 먹은 것보다 맛있었습니다. 메뉴판이 스페인어로만 쓰여 있어서 처음엔 당황했는데, 사전에 앱에서 미리 주문을 해두면 웨이팅 없이 받을 수 있으니 미리 주문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바베큐 쪽으로는 필즈 BBQ(Phil's BBQ)가 샌디에고 대표 맛집으로 꼽힙니다. 저녁 8시가 넘어도 웨이팅이 전혀 줄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테이크아웃 전용 라인이 따로 있어서 투고(To-go) 주문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한국인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베이비 립 다이너, 코울슬로, 대형 어니언링 조합이 정석으로 통하는데, 어니언링이 특히 예상 밖으로 맛있었습니다.
여행 일정이 3박 이상이라면 키친(주방)이 갖춰진 레지던스 타입 호텔을 고려해보시길 권합니다. 홈우드 스위트 바이 힐튼(Homewood Suites by Hilton), 레지던스 인(Residence Inn by Marriott), 하얏트 하우스(Hyatt House) 계열이 대표적입니다. 현지 한인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직접 해 먹으면 식비를 크게 줄일 수 있고, 달고 짠 미국 음식에 지쳤을 때 큰 위안이 됩니다. 샌디에고 한인 마트는 쌀, 김치 등 한국 식재료를 구비하고 있고 가격도 합리적인 편입니다.
여행 경비, 현실적으로 따져보기
샌디에고가 은퇴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로 자주 꼽혀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 은퇴자 커뮤니티 전문 매체인 U.S. News & World Report는 샌디에고를 수년간 미국 최고의 은퇴 도시 상위권에 올렸는데, 온화한 기후와 낮은 범죄율, 풍부한 의료 인프라가 주된 이유로 꼽혔습니다(출처: U.S. News & World Report). 최근에는 물가 상승으로 순위가 내려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직접 가보면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납득이 됩니다.
여행자 입장에서 샌디에고의 물가는 LA와 비슷하거나 일부 항목에서는 더 비쌉니다. 현실적인 예산 계획을 위해 주요 항목별 비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호텔: 레지던스 타입 기준 1박 200~250달러 수준 (위치·성수기에 따라 변동)
- 호텔 주차비: 1박당 50달러 이상, 발렛 팁 별도 2달러 이상
- MLB 야구 티켓: 정가 기준 1층 좌석 130달러 내외, 티켓 리셀 플랫폼 활용 시 20~30% 절감 가능
- USS 미드웨이 뮤지엄 입장료: 성인 34달러, KKday 사전 예약 시 할인
- 식비: 직접 해먹는 경우 1인 1일 20~30달러 수준도 가능
MLB 티켓과 관련해, 연간 회원권 보유자들이 잉여 티켓을 올리는 리셀 플랫폼을 활용하면 좋은 좌석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리셀(Resell)이란 원래 구매자가 사용하지 않을 티켓을 제3자에게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스텁허브(StubHub) 같은 플랫폼이 대표적입니다. 원하는 경기와 좌석 구역, 열(row)을 미리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샌디에고 기후는 야외 좌석의 그늘 여부가 관람 쾌적도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구장 내 구역별 그늘 정보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출처: Petco Park 공식 사이트).
샌디에고는 한 번 가서 다 보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제가 여러 번 다녀왔어도 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일정이 빠듯하다면 라호야 코브 일몰만큼은 꼭 넣으시길 권합니다. 기차든 자동차든 이동 수단을 정했다면, 나머지는 현지에서 천천히 맞춰가도 충분히 즐거운 도시입니다.